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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사무엘상

눈물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 (사무엘상 1장 1-20절)

by 망고를유혹하네 202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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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자리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역사”

사무엘상 1장 1-20절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의 시간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살아가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자녀의 문제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가정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건강의 문제이고,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인 문제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사람에게 받은 상처일 수 있습니다.

그런 문제들은 쉽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말한다고 해서 다 이해받는 것도 아니고,
설명한다고 해서 곧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어떤 눈물은 사람 앞에서 흘리지 못하고,
혼자 삼키게 됩니다.
마음속에 묻어 두고,
괜찮은 척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모르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지나쳐 버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시편 56편 8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귀하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내 눈물을 몰라줄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도 내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보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한나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오래된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는 해마다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눈물의 자리에서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눈물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나의 눈물을 통해 한 아이를 주셨고,
그 아이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여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도 깨닫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물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눈물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눈물의 자리를 은혜의 시작점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본문 배경]

오늘 본문은 사무엘서의 시작입니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기를 보여 줍니다.

사사 시대가 끝나고 왕정 시대가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이 지파 중심의 느슨한 공동체에서
왕이 다스리는 나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거대한 역사의 변화가 왕궁에서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권력자의 회의실에서 시작된 것도 아닙니다.

사무엘서의 시작은 한 여인의 눈물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를 낳지 못해 고통하던 한 여인,
브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마음이 상했던 한 여인,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했던 한나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본문 1절을 보면, 한나의 남편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한나이고, 다른 한 사람은 브닌나였습니다.
브닌나에게는 자녀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당시 고대 사회에서 자녀가 없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아픔만이 아니었습니다.
가문의 미래와 생존이 걸린 문제였고,
여인에게는 큰 수치와 고통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한나의 아픔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브닌나는 한나를 심히 격분하게 했습니다.
본문은 브닌나가 한나를 “괴롭게 하여 격분하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엘가나의 가족은 해마다 실로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배하러 가는 그 자리에서도 한나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라가는 길인데,
그 길이 한나에게는 가장 아픈 길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온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마음이 평안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아무 문제 없이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당 안에도 눈물을 품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도 마음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서 더 깊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 5절과 6절은 한나가 임신하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이 말씀은 우리에게 쉽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한나의 태를 닫으셨는가?
왜 하나님은 한나가 그토록 아파하는 시간을 허락하셨는가?

그러나 사무엘서를 끝까지 읽어 보면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고통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눈물 속에서 한 시대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 시대 이스라엘은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희귀했고, 예배는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에 하나님은 새로운 말씀의 사람을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한나의 기도를 통해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단순히 한 여인이 아이를 얻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눈물의 자리에서 기도한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한 시대를 새롭게 여시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앙의 원리는 무엇입니까?

 

 

[본론]

1.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본문을 보면 한나의 고통이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나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브닌나는 그런 한나의 아픔을 건드렸습니다.

본문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여기서 브닌나는 단순히 말 한마디로 한나를 자극한 것이 아닙니다.
해마다 반복적으로 한나의 상처를 건드렸습니다.
한나가 가장 아파하는 부분을 알고 있었고,
그 부분을 계속해서 찌른 것입니다.

사람에게 받는 상처 중에 가장 아픈 상처가 무엇입니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공격받을 때입니다.

내가 노력한다고 당장 바꿀 수 없는 문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그 문제를 누군가 반복해서 건드릴 때 사람의 마음은 무너집니다.

한나가 그랬습니다.
본문 7절은 한나가 울고 먹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너무 괴로워서 음식조차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남편 엘가나가 한나에게 말합니다.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습니다.
그의 말 속에는 한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한나의 깊은 아픔을 다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위로가 가진 한계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그 사람이 내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말로 위로해 주어도,
그 말이 내 상처의 깊은 곳까지 닿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엘가나가 한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엘가나도 한나의 눈물을 다 닦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위로해 줍니다.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힘내.”
물론 고마운 말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말로도 마음이 회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 안의 깊은 슬픔은 여전히 남아 있고,
밤이 되면 다시 눈물이 흐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한나는 사람에게서 완전한 답을 찾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물을 붙들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믿음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아픔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척하지도 않았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울었습니다.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갔습니다.

신앙은 눈물이 없는 삶이 아닙니다.
신앙은 아픔이 없는 삶도 아닙니다.
신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도 울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사랑하는 사라를 잃고 울었습니다.
요셉도 형들을 만났을 때 울었습니다.
다윗도 압살롬의 죽음 앞에서 울었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눈물 자체가 믿음 없음의 증거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 눈물을 어디로 가져가느냐입니다.

한나는 눈물을 원망으로만 끝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받아 주신다는 사실이 은혜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강한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됩니다.
내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한나와 같은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오래 기도했지만 아직 응답되지 않은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상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무너지는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몰라주는 눈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이 가볍게 여기는 아픔도 하나님은 귀하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눈물의 자리에서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 눈물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은혜의 시작점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2. 기도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둘째로, 기도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본문 9절부터 보면 한나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울고 먹지 못하던 한나가 일어나 여호와 앞에 나아갑니다.

이 장면이 중요합니다.
한나는 계속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상처 속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분노와 서러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본문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의 기도는 아주 정돈된 기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문장이 아름답고 논리가 완벽한 기도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본질을 배웁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포장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마음을 그럴듯하게 정리해서 하나님께 보고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기도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고백합니다.

이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아들을 주세요”가 아닙니다.
물론 한나는 아들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기도는 자기 소원을 이루기 위한 욕망의 기도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주시면, 그 아이를 여호와께 드리겠습니다.”

이것이 한나의 기도가 깊은 이유입니다.

한나는 자신의 상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그 상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자기 욕망을 붙들고 하나님을 움직이려 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아픔을 하나님께 맡기며 하나님의 뜻 안에 자신을 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웨슬리안 신앙의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한나가 아이를 얻은 것은 자기 공로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은혜 앞에 믿음으로 응답했습니다.
기도했고, 맡겼고,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응답이 만나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기도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한나가 기도할 때, 또 하나의 아픈 일이 생깁니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오해한 것입니다.
한나는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었고, 입술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서운했겠습니까?
이미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겨우 마음을 쏟아놓고 있는데,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오히려 자신을 오해합니다.

이 장면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어두움을 보여 줍니다.
제사장 엘리는 한 여인의 깊은 기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무뎌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는 그 오해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분노로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차분히 대답합니다.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여기서 “내 심정을 통한 것”이라는 표현이 참 귀합니다.
한나는 자기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부었습니다.
마음속에 쌓인 슬픔, 원망, 절망, 고통을 하나님 앞에 다 쏟아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 쏟아놓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서는 다 말할 수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오해받을까 두려워 숨겨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기도의 놀라운 능력은 무엇입니까?
기도한다고 즉시 상황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먼저 사람이 바뀝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한나가 기도를 마친 뒤에 이렇게 됩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아직 아이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아직 현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브닌나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한나의 문제가 즉시 해결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한나의 얼굴에서 근심 빛이 사라졌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하면서 문제가 하나님께 맡겨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마음의 짐이 하나님께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서 한나는 더 이상 혼자 그 문제를 붙들고 있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기도의 은혜입니다.
기도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는 문제를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선하게 다루실 수 있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말씀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모든 문제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즉시 풀린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붙드십니다.
기도하면 염려가 평안으로 바뀝니다.
기도하면 절망 가운데서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한나처럼 마음이 괴로운 일이 있습니까?
사람에게 다 말하지 못한 사정이 있습니까?
오래도록 응답되지 않아 지친 기도 제목이 있습니까?

그 문제를 붙들고 혼자 무너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심정을 통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쏟아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근심 빛을 거두어 주시며,
다시 살아갈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시대를 준비하십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시대를 준비하십니다.

본문 19절과 2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엘가나와 그의 가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나를 생각하셨습니다.
때가 되어 한나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한나는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 했습니다.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표현은 이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하나님께서 한나를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나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말은 단순히 잊고 있다가 다시 떠올렸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적 사랑으로 돌보시고,
때가 되어 은혜롭게 역사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사무엘의 탄생을 단순히 한 가정의 기쁨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물론 사무엘의 출생은 한나에게 큰 기쁨이었습니다.
오래 기다렸던 응답이었습니다.
눈물이 변하여 찬송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신 일은 그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하나님은 한나의 품에 한 아들을 주셨지만,
그 아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미래를 준비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훗날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선지자이며, 제사장적 역할을 감당하는 인물이 됩니다.
그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고,
다윗에게도 기름을 부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왕으로 세웁니다.

다시 말해 사무엘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다리와 같은 인물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 세워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사무엘이 어디서 시작되었습니까?
한나의 눈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나의 기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움직이실 때 언제나 거대한 힘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한 사람의 기도를 사용하십니다.
한 사람의 순종을 사용하십니다.
한 사람의 눈물을 사용하십니다.

모세의 시대도 한 어머니 요게벳의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출애굽의 거대한 역사는 갈대상자에 아이를 담아 하나님께 맡긴 한 어머니의 믿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다윗의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키가 크고 눈에 띄는 엘리압을 보았지만,
하나님은 들판에서 양을 치던 어린 다윗을 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로마 황제의 명령과 권력을 주목했지만,
하나님은 나사렛의 한 처녀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이런 방식으로 시작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자리,
작아 보이는 자리,
눈물의 자리,
기도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를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의 눈물을 하찮게 여기지 마십시오.
내가 드리는 기도 하나가 가정을 살릴 수 있습니다.
내가 흘리는 눈물의 기도가 자녀의 길을 바꿀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작은 순종이 교회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내 눈물 하나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이렇게 작은 사람인데 하나님 나라에 무슨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그러나 성경은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 손에 붙들린 한 사람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한 사람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한나는 자기 아픔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한 시대를 준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내 문제 하나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 더 큰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는 내 가정의 아픔을 가지고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통해 누군가를 살리는 통로를 만드십니다.

그래서 신앙은 언제나 나를 넘어섭니다.
내 눈물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나만의 눈물로 끝나지 않습니다.
내 기도도 하나님께 드려지면 나만을 위한 기도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더 넓은 은혜의 길을 열어 가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는 기도,
자신의 아픔을 하나님께 맡기는 기도,
하나님께서 주시면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헌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도 한 사람의 기도가 교회를 살립니다.
한 가정의 기도가 다음 세대를 살립니다.
한 어머니의 기도, 한 아버지의 기도, 한 성도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의 미래를 준비하는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응답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눈물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한나를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눈물도 기억하십니다.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기도도 들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눈물의 자리에서 사무엘과 같은 은혜의 열매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결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기도는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한 사람의 기도를 통해 시대를 준비하십니다.

한나의 이야기는 단순히 오래 기다리던 응답을 받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눈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붙든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
오래 기다린 응답,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 때문에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눈물의 자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리가 되면,
그곳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번 한 주간,
눈물이 찾아올 때 혼자 무너지지 마십시오.
그 눈물을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십시오.
마음을 쏟아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기억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역사를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눈물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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