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으로 오신 말씀"
본문 : 요한복음 1:1–14
[서론 : 세상은 어둠을 두려워하지만, 하나님은 어둠 속으로 오셨다]
대림절 4주차는 성탄 직전의 마지막 준비 주간입니다.
성탄이 가까워질수록 세상은 화려해지지만,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어둠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가정의 어려움,
경제적 무게,
삶의 고된 자리,
사역의 고민…
어둠은 언제나 우리 삶의 구석에 자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둠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어둠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세상은 어둠이 사라져야 빛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말씀하십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즉, 빛은 어둠의 부재가 아니라
어둠 가운데서 시작됩니다.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에 우리는 이 신비 앞에 섭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이
왜 우리 가운데 오셨는지,
어떻게 오셨는지,
어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지를 묵상하는 자리입니다.
[본문 배경 : 요한복음의 성탄 이야기]
마태와 누가는
목자들, 동방 박사, 베들레헴, 말구유로 성탄을 전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어두운 세계를 밝힙니다.
요한은 이야기 대신 선언으로 시작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요한복음의 성탄은
아기가 태어나는 이야기보다
영원하신 말씀이 시간 속에 들어오시는 사건에 초점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단순히 감성적 동화로 전하지 않고
창세기 1장을 다시 쓰듯
우주의 창조와 구속의 연결로 선포합니다.
요한복음의 성탄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구원을 가져오셨는지를
가장 깊이 있게 보여주는 복음의 서론입니다.
[본론]
요한복음 1장 1–14절은
대림절의 마지막 메시지를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 영원한 말씀으로 오셨고
- 빛과 생명으로 오셨고
- 은혜와 진리로 우리 안에 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 예수님은 영원한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요한복음은 “태초에”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창세기 1장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태초”는
단지 우주의 시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이전의 영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여기서 “말씀”(로고스)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기 계시,
곧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은 이 말씀을 가리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이셨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성을 선포하는 가장 강력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시작하신 분이 아니라
영원 안에서 이미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
곧 창조의 주,
역사의 주권자,
구원의 주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멀리 계신 분처럼 느끼지만
요한복음은 선언합니다.
“영원한 말씀이 우리에게 오셨다.”
인간의 한계와 약함, 어둠 가운데
스스로 걸어 들어오셨습니다.
대림절의 마지막 주간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을 묵상하는 절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려오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셨기에
우리는 오늘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빛과 생명으로 오셨습니다
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생명이며, 그 생명은 곧 빛입니다.
빛은 단순히 밝음이 아니라
진리를 드러내고, 죄를 비추고, 길을 보여주는 능력입니다.
요한은 “빛이 어둠에 비쳤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헬라어 원문에서 현재시제를 사용합니다.
즉 “계속해서 비추고 있다”는 뜻입니다.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선명해집니다.
세상이 더 어두워질수록
예수님의 빛은 더 강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5절은 이 사실을 안타깝게 이어서 말합니다.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깨닫다”는 말은,
“붙잡다, 이해하다, 받아들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빛은 이미 비추고 있는데
어둠은 그것을 붙들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 선포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
빛이 비추어도 스스로 감추는 사람
진리가 드러나도 외면하는 사람
그러나 빛은 절대 꺼지지 않습니다.
어둠이 깊어도 빛은 어둠을 이깁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위함입니다.
그 생명은 새 출발입니다.
새 방향입니다.
새 길입니다.
새 사람입니다.
대림절의 빛은
단지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3)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로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14절은 요한복음 1장의 절정이며,
신약 성경 전체에서도 가장 깊은 구속사적 구절 중 하나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여기서 ‘거하시매’라는 헬라어 단어는
“장막을 치다”, “우리와 함께 머물다”라는 의미입니다.
구약의 ‘성막’(회막) 개념과 연결됩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은 성막 가운데 임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은
성막을 대신한 참된 하나님 임재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단순한 아기의 출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사건,
곧 하나님이 우리의 삶 한가운데
상처 가운데, 죄 가운데, 절망 가운데
거하기 위해 오신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씀합니다.
은혜는 죄인을 살리고,
진리는 죄인을 자유케 합니다.
은혜는 우리를 품고,
진리는 우리를 세웁니다.
은혜는 위로하고,
진리는 새 길을 인도합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우리를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다.
대림절의 빛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의 밝힘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둠 가운데로 오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결론 : 어둠 속으로 들어오신 빛을 받아들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 마지막 주일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라.”
그분은 영원한 말씀으로
생명과 빛으로
은혜와 진리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묻습니다.
“너희는 그 빛을 받아들이겠느냐?”
빛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의 삶은 새로워집니다.
어둠이 물러갑니다.
관계가 변합니다.
상처가 치유됩니다.
새 생명이 시작됩니다.
성탄은 단지 예수님이 오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오시는 날이어야 합니다.
올해 대림절을 마무리하며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장막을 치소서.
어둠 속에 있는 저를 비추소서.
은혜와 진리로 저의 삶을 새롭게 하소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는
참된 성탄이 되게 하옵소서.”
빛으로 오신 주님이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에
새 생명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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