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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절기자료

[맥추감사주일]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 (신명기 16장 9-12절)

by 망고를유혹하네 202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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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
본문: 신명기 16장 9-12절

 

[들어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오늘 맥추감사주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맥추감사주일은 단순히 절기 하나를 지키는 날이 아닙니다.
한 해의 절반을 지나오면서
“여기까지 인도하신 분이 누구신가?”를 다시 묻는 날입니다.

사실 우리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모든 날이 넉넉했던 것은 아닙니다.
마음 편한 날만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어떤 분은 건강의 염려를 안고 여기까지 오셨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가정의 문제를 품고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경제적인 부담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견디며 오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여기까지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환경이 완벽할 때 나오는 고백이 아닙니다.
감사는 모든 문제가 사라진 다음에 드리는 인사가 아닙니다.

참된 감사는,
아직 부족함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인도하실 것이다”라는 신뢰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우리의 형편만 바라보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계산만 붙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 앞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 배경]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절기 가운데
칠칠절, 곧 맥추절에 관한 말씀입니다.

본문 9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이스라엘 백성은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일곱 주를 세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칠칠절을 지켰습니다.

칠칠절은 말 그대로 일곱 주가 지난 뒤에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 절기는 곡식의 첫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농사를 지었습니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고, 비를 기다리고, 땅의 열매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농부는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밭을 갈 수 있습니다.
잡초를 뽑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를 내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
햇빛을 명령할 수는 없습니다.
땅속에서 생명이 자라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추수는 사람의 수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첫 열매를 거두었을 때
그 열매를 자기 실력의 결과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주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의 삶은 주님의 은혜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단순히 예물을 드리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10절에서는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11절에서는 가족뿐 아니라 레위인, 객, 고아,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12절에서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의 감사는 단순히 “수확해서 감사합니다”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감사입니다.
받은 복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감사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감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감사의 신앙은 무엇입니까?

 

 

[본론]

1.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첫 번째로,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면서
단순히 곡식만 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창고만 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거둔 열매만 계산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스라엘은 원래 자유인이 아니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백성이었습니다.
자기 땅도 없고, 자기 이름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바로의 명령 아래 고통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지나게 하시고,
마침내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추수한 곡식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곡식 안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가 종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셨다.”
“우리가 광야에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땅을 주셨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다.”

이 기억이 감사의 뿌리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를 잃어버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기억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디에서 건져 주셨는지 잊어버리면,
지금 가진 것도 작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잊어버리면,
오늘의 삶도 불평의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은혜를 기억하면 달라집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내 가정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내 건강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내 일터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오늘 예배드릴 수 있는 믿음도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십시오.
넘어질 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마음이 무너질 만큼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때로는 말씀으로 붙드셨고,
때로는 기도하게 하셨고,
때로는 사람을 보내 위로하셨고,
때로는 생각하지 못한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까지 온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감사는 이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내가 애굽에서 종 되었던 사람임을 기억하는 것,
내가 죄와 사망 가운데 있던 사람임을 기억하는 것,
그런 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참된 감사의 출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맥추감사주일에
우리의 마음이 다시 은혜의 기억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불평의 기억보다 은혜의 기억이 커지기를 바랍니다.
상처의 기억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기억이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입술에는 감사가 회복될 것입니다.

 

2. 감사는 받은 복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는 받은 복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신앙입니다.

본문 10절을 보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여기에서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네게 복을 주신 대로”
그리고 “네 힘을 헤아려”
또 “자원하는 예물”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비교하며 드리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들만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감사는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이것이 웨슬리안 신앙의 중요한 균형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부르시고, 먼저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은혜 앞에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복을 얻어내기 위한 거래가 아닙니다.
감사는 이미 받은 은혜를 깨닫고 드리는 믿음의 응답입니다.

그러므로 감사의 핵심은 액수가 아니라 마음입니다.
크기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형식이 아니라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드리는지만 보지 않으십니다.
그 안에 어떤 믿음이 담겨 있는지를 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한 과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성전 헌금함 앞에 앉아 계실 때,
많은 부자들이 많은 헌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넣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작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인은 자기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금액의 크기보다
그 안에 담긴 믿음의 깊이를 보셨습니다.

맥추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물질을 드릴 수 있습니다.
시간을 드릴 수 있습니다.
섬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원하는 마음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는 마음이 아니라
은혜에 감격하여 기쁘게 응답하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은 저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에게는 건강의 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견딜 힘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가족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일터를 지켜 주셨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받은 은혜 앞에 어떻게 응답해야 합니까?”
“하나님, 제 삶의 무엇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까?”

감사는 마음속 감정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감사는 응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입술의 감사가 삶의 헌신으로 이어지고,
예배의 감사가 순종의 자리로 이어지고,
받은 은혜에 대한 고백이 실제적인 드림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감사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배가 될 것입니다.

 

3. 감사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신앙입니다.

세 번째로, 감사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신앙입니다.

본문 11절을 보겠습니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지킬 때
혼자 즐거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와 네 자녀만이 아닙니다.
노비도 함께하라고 하셨습니다.
레위인도 함께하라고 하셨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도 함께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는
나 혼자 배부르고 끝나는 감사가 아닙니다.
내 가정만 즐거워하고 끝나는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흘려보내야 합니다.

맥추절의 감사는 반드시 공동체적 감사로 이어져야 합니다.
내가 받은 복 안에 다른 사람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내 식탁에 연약한 이웃의 자리를 남겨 두는 것입니다.
내 기쁨 속에 외로운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성경 룻기를 보면, 보아스가 바로 이 정신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을 잃은 과부였고, 이스라엘 땅에서는 객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에게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습니다.
보아스는 자기 밭의 모든 것을 움켜쥐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자가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친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 가르치신 은혜의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람은,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신앙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작은 나눔의 자리에서
놀라운 구속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룻은 보아스와 가정을 이루게 되었고,
그 가문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고,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드리는 감사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감사가 깊어지면 시선이 넓어집니다.
나만 보던 사람이 이웃을 보게 됩니다.
내 문제만 붙들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게 됩니다.
내 필요만 계산하던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참된 감사는 언제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나눔으로 이어집니다.
섬김으로 이어집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객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
외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질병으로 지친 사람들,
기도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는
그 은혜를 우리 안에만 가두어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은혜를 통해 누군가를 살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주일은
감사헌금을 드리는 날일 뿐 아니라,
감사의 삶을 결단하는 날입니다.

“하나님, 제가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게 하옵소서.”
“하나님, 제 주변의 연약한 이웃을 보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교회가 지역과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가 우리 안에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맥추감사주일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신앙입니다.
감사는 받은 복에 믿음으로 응답하는 신앙입니다.
감사는 이웃과 함께 나누는 신앙입니다.

지나온 반년을 돌아보면
부족한 것도 있었고, 아쉬운 것도 있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여기까지 인도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가 받은 복에 믿음으로 응답하겠습니다.”
“하나님, 제 감사가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지게 하옵소서.”

이 감사의 고백이 우리의 남은 한 해를 새롭게 열어 가기를 바랍니다.
감사가 불평을 이기고,
감사가 염려를 이기고,
감사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의 자리를 새롭게 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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