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료/절기자료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3, 마태복음 26장 6–16절 설교] "헌신과 배신 사이에서 – 누구를 향해 마음을 쏟고 있는가?"

by 망고를유혹하네 2025. 3. 30.
반응형
"헌신과 배신 사이에서 – 누구를 향해 마음을 쏟고 있는가?"

 

본문: 마태복음 26:616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서론]

고난주간 셋째 날,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줍니다.

 

한 여인은 매우 값진 향유 한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것을 아낌없이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모습입니다.

 

반면,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으며 제사장들과 거래합니다.

돈을 받고 주님을 팔기로 결심한 배신의 장면입니다.

 

이 두 장면이 나란히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헌신과 배신 사이,

주님을 향해 마음을 쏟은 여인과,

돈을 향해 마음을 빼앗긴 제자

이 대조는 오늘 우리 자신의 신앙을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본문 배경]

이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며칠 앞둔 시점,

베다니 마을의 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매우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67).

 

당시 관습으로 볼 때 이 행동은 매우 파격적이며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 쉬운 행동이었습니다.

실제로 몇몇 제자들이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이 향유를 왜 이렇게 허비하느냐? 가난한 자들에게 팔아 줄 수 있지 않았느냐?”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은 내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온 세상 어디서든 이 여인의 행한 일이 전해질 것이다.”

 

그 직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기 위해 대제사장들에게 갑니다(1416).

 

 

[본론]

1. 사랑은 아낌없이 드리는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7)

 

이 여인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께 자신의 향유를 부었습니다.

향유 한 옥합은 당시 노동자 1년치 품삯에 해당하는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물질적인 헌신이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드리는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 감사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를 도울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은

곧 죽으실 주님 앞에 드려야 할 마지막 헌신의 기회였습니다.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헌신은 손해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예수님만이 가장 귀하신 분이기에,

여인은 아낌없이, 기꺼이, 전부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헌신은 어떻습니까?

내 시간, 내 정성, 내 마음을

주님께 아낌없이 드리고 있습니까?

 

 

2. 헌신은 때로 오해받고 손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어찌하여 이것을 허비하느냐” (8)

 

제자들은 여인의 행동을 허비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기준,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향유를 깨뜨려 한 번에 써버리는 일은 비효율적인 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10)

사람은 헌신을 허비로 보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좋은 일이라 평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13)

 

하나님께 드려진 헌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낭비처럼 보여도,

주님께는 영원히 기억될 거룩한 향기입니다.

 

지금 내가 주님께 드리고 있는 수고와 사랑은

주님께서 잊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3. 같은 자리에서, 다른 선택을 한 사람 가룟 유다의 배신

그런데, 그 순간 여인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선택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를 주려느냐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1415)

 

그는 바로,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과 함께 3년을 걸었고,

수많은 기적을 함께 보았으며,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말씀을 들은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주님이 아닌 자기 중심, , 실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더 이상 자신이 기대한 메시아가 아니라는 판단에,

그는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은 삼십,

노예 한 사람 값에 해당하는 돈에

생명의 주인을 넘겨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주님을 따르되, 정말 마음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은 세상을 향해 팔려 있지는 않습니까?

 

 

4. 헌신과 배신 사이에서 오늘 우리는 누구의 길을 따를 것인가?

이 본문은 헌신과 배신이라는 극단적인 두 선택을 나란히 보여줍니다.

누군가는 자기 전부를 주님께 드렸고,

누군가는 주님을 자기 이익을 위해 팔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예수님 가까이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들었고, 그분 앞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라 중심입니다.

예수님 가까이에 있다고 해서 다 제자가 아닙니다.

마음이 주님을 향해 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있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고난주간, 우리는

자기 계산이 아닌 사랑으로,

조건 없는 순종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도전합니다.

나는 주님 앞에 어떤 마음을 드리고 있는가?

나는 주님께 무엇을 드리고 있는가?

 

세상이 보기에는 어리석어 보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손해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오늘 주님을 향해 아낌없이 향유를 붓는 사람처럼,

마음과 정성과 삶을 드리는 진정한 제자로 서기를 결단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주님,

한 여인의 향유처럼 저희의 마음을 아낌없이 드리기 원합니다.

세상은 허비라 말해도,

주님은 그것이 좋은 일이라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계산하며 따지던 저희를 용서하소서.

오늘도 주님을 믿고 사랑하며 따르는 제자로 서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