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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료/절기자료

[고난주간 특별새벽기도회 1, 마가복음 11장 12–19절 설교]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 – 기도하는 집, 은혜가 회복되는 자리"

by 망고를유혹하네 2025.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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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예수님 – 기도하는 집, 은혜가 회복되는 자리"

 

본문: 마가복음 11:1219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 그리고 날이 저물매 그들이 성 밖으로 나가더라

 

 

[서론]

고난주간 첫째 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성전에서 충격적인 행동을 하십니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뒤엎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내쫓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장면은 당혹스러울 수 있습니다.

평소에 온유하시고 자비로우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런 격렬한 행동을 하실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사건은 예수님의 분노가 아니라,

거룩한 열심에서 나온 정결의 선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기도의 자리로 회복되기를 원하신 주님의 마음이 담긴 행동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예배하고 있는가?

내 삶은 하나님께서 거하실 성전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본문 배경]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다음 날,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오셨습니다(12).

 

그 길에서 무화과나무를 향한 상징적인 행동이 먼저 등장합니다(1214).

잎은 무성했지만 열매는 없었습니다.

이는 겉모습은 경건하지만, 실제 열매는 없는 이스라엘의 형식적인 신앙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집이 기도의 자리가 아닌,

이익을 위한 장사터로 전락한 모습을 마주하십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기능과 중심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행동을 하십니다.

 

 

[본론]

1. 예수님은 열매 없는 신앙을 책망하십니다 무화과나무 사건의 의미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아무것도 없음을 보시고그 나무에게 말씀하시되” (1314)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표면적으로는 예수님의 저주처럼 보이지만,

이 행동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비유적으로 책망하신 것입니다.

 

당시 유대 종교는

겉모습은 경건해 보였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멀어져 있었고,

형식은 유지했지만, 믿음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을 줍니다.

나는 지금 신앙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혹시 잎은 무성하지만, 실제 열매는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은 단지 예배의 횟수를 보시는 분이 아니라,

예배를 통해 맺혀지는 믿음과 순종의 열매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2. 성전은 장사하는 집이 아니라, 기도하는 집입니다 예배의 본질 회복

이에 성전에 들어가사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1517)

 

예수님은 성전 안에서 행해지던 종교적 장사 행위를 정면으로 뒤엎으십니다.

이것은, 단순히 거래 행위를 없애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전의 목적이 왜곡된 것에 대한 철저한 회복의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은

예배하는 곳,

하나님과 만나는 곳,

간절한 기도가 살아 있는 곳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은

장사하는 장소로,

제도화된 권력의 중심으로,

영혼 없는 종교 행위의 무대로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습니다(이사야 56:7).

이 말씀은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라는 외침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그리고 나의 마음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의 성전입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 안의 뒤엎으셔야 할 것들을 보십니다.

무너진 기도, 형식적 예배, 은혜 없는 습관적 신앙

그 모든 것을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 오늘도 성전에 들어오십니다.

 

 

3. 성전은 모든 민족을 위한 은혜의 공간입니다 편협한 경건을 넘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17)

 

당시 성전은 유대인 중심의 제사와 율법이 중심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성전 안 깊숙이 들어갈 수 없었고,

기껏해야 이방인의 뜰까지만 허락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은혜가 특정 민족이나 계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선포하십니다.

 

이 고백은 오늘 우리 교회가 회복해야 할 중요한 사명입니다.

누구든지 올 수 있는 예배의 자리

차별 없이 은혜를 나누는 공동체

세상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는 성전

 

혹시, 오늘 나의 예배는

나만을 위한 은혜에 머무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집은 나의 기복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

 

 

4.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안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나 자신이 성전입니다

예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성전은 단지 건물만이 아닙니다.

오늘 신약시대의 성전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6장에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6:19)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마음과 삶을 성전 삼아 오십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은밀한 죄,

형식적인 예배,

중단된 기도,

자기 중심의 신앙을

뒤엎고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

회개와 기도가 다시 살아나고,

예배가 회복되며,

주님께서 머무시는 성전의 은혜가 다시 시작될 줄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주간 첫째 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도 이 고난주간에

자신의 삶을 성전 삼아 주님께 내어드립시다.

겉은 신앙처럼 보이지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기도의 불이 꺼진 우리의 성전을

주님께서 깨끗이 하시도록 맡겨 드립시다.

 

이를 통해,

예배가 회복되고,

기도가 살아나며,

은혜가 머무는 집,

그런 성전으로 우리 삶을 다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주님,

오늘 우리의 마음에도 들어와 주셔서

형식과 타협과 죄로 어지러워진 성전을 깨끗하게 하소서.

기도의 불을 다시 지피시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시켜 주소서.

주님께서 머무시기 합당한 삶의 성전으로 세워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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