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교자료/절기자료

[사순절 예배 4, 요한복음 11장 1–44절 설교]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by 망고를유혹하네 2025. 3. 29.
반응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본문: 요한복음 11:144 (나사로의 부활)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서론]

삶의 한가운데서 우리는 크고 작은 죽음의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관계의 단절, 실패의 고통, 소망이 무너질 때 우리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끝이야. 더는 희망이 없어.”

하지만 그런 절망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오늘 본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의 사건입니다.

단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렸다는 기적만이 아니라,

절망을 딛고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의 본질이 드러나는 본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 삶의 죽음과 절망의 자리에도

여전히 부활과 생명의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진리를 붙들기를 바랍니다.

 

 

[본문 배경]

나사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자였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오빠의 병이 깊어지자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소식을 알립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곧 오셔서 병든 나사로를 고쳐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일부러 이틀을 더 머무십니다.

그리고 나사로가 죽은 후에야 유대로 향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묻고 싶습니다. 왜 그분은 바로 가지 않으셨을까?”

그러나 이 지연은 하나님의 더 크고 분명한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주님의 때는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지만,

그분의 계획은 언제나 더 완전하다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본론]

1. 지체되는 응답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4)

 

마르다와 마리아의 기대와 달리 예수님은 곧장 움직이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나사로의 병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믿음을 더욱 견고히 하시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기도가 곧바로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무관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유기의 침묵이 아니라, 섭리의 침묵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기다리게 하시고, 고난의 시간을 지나게 하시지만,

그 모든 지연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과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은 상황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5)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죽은 오빠를 앞에 두고 절망하던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시고,

 

이어서 선언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님은 단순히 죽은 자를 살리는 분이 아니라,

부활과 생명 자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믿음이란 상황이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믿는 확신입니다.

 

우리는 종종 언제, 어떻게라는 문제에만 집중하지만,

예수님은 누구를 믿느냐는 본질을 묻고 계십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생명의 주님이 오늘 나의 삶을 다스리신다는 믿음,

그 믿음이 진정한 소망의 시작입니다.

 

 

3. 예수님의 눈물 고통을 함께 아시는 주님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5)

 

가장 짧은 이 구절은 가장 깊은 위로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줄 아셨고, 곧 살리실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셨을까요?

 

그것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눈물에 함께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

그분은 단지 기적을 베푸는 능력의 주님이 아니라,

상한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자비의 주님이십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 상실, 외로움, 낙심의 자리에서도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울고 계시며,

곧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를 이루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4. 무덤 앞에 서신 주님 죽음을 이기시는 승리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시되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자가 나오는지라” (4344)

 

무덤 앞에 선 예수님은 단호하게 외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리고 죽었던 나사로는 다시 살아나, 수족을 동인 채 무덤에서 걸어나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적의 기록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죽음조차도 그분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죽어버린 희망, 식어버린 열정, 무너진 마음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나오라. 다시 살아나라.”

 

오늘도 주님은 우리 각자의 무덤 앞에 서서 생명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그 말씀에 응답하는 자마다, 다시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때때로 지체되는 응답에 낙심하고, 눈앞의 현실 앞에서 좌절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 고백이 오늘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 새겨지기를 원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슬픔 속에서 함께 우시는 주님,

무덤 앞에서 생명을 명령하시는 그 주님이 오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시 소망할 수 있습니다.

죽음 같은 현실 속에서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믿음으로,

이 땅 가운데, 힘있게 살아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도 생명을 명령하신 주님의 음성을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소서.

상황이 바뀌지 않아 낙심할 때, 지체된 응답 앞에서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오늘을 살아가게 하소서.

우리의 상한 마음에 주님의 눈물이 함께하시고,

우리의 죽어버린 소망에 다시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