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의 참된 의미: 생명을 위한 규례
본문: 마태복음 12:1-14
서론
예수님께서는 종종 바리새인들과 안식일 문제로 논쟁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신앙의 핵심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 목적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율법의 형식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가 신앙생활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본론
1.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자른 제자들 (1-8절)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1) 바리새인들의 문제제기
-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자르며 먹었습니다.
-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를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라 비난했습니다.
-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곡식을 베거나, 음식을 준비하는 것도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2) 예수님의 반박: 다윗의 예를 들다
- 예수님께서는 사무엘상 21장의 사건을 인용하십니다.
-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굶주렸을 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먹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율법보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함을 보이셨습니다.
(3) 성전과 제사보다 중요한 것
-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제사장들도 성전에서 일하지만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호세아 6:6)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4)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십니다.
- 이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초월하는 권위를 가지셨다는 뜻입니다.
- 안식일의 목적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적용점:
-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적인 규칙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율법 준수가 아니라, 긍휼과 사랑임을 기억하는가?
-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율법의 참된 의미를 깨닫고 있는가?
2.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다 (9-14절)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그들의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1) 바리새인들의 함정 질문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 그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은가?”라고 질문합니다.
- 그들은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시면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할 생각이었습니다.
(2) 예수님의 반박: 양의 비유
- 예수님께서는 “만약 너희 중 누가 양 한 마리가 있는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내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 양도 구해주면서, 하물며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3) 안식일은 생명을 위한 날이다
- 예수님께서는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선언하십니다.
- 안식일의 본질은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의 기적과 바리새인들의 반응
-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자기들의 전통과 율법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적용점:
-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형식적인 규칙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가?
-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사랑과 긍휼의 삶임을 깨닫고 있는가?
-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세상의 비난을 감수할 용기가 있는가?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 율법의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며, 형식적인 규칙보다 긍휼이 중요하다.
-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진정한 쉼과 회복을 주시는 분이다.
- 신앙생활에서 형식보다 본질을 붙잡고, 사랑과 긍휼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종종 율법적 신앙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진정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적인 율법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은가?
- 내 삶에서 사람을 살리는 긍휼과 사랑을 실천하는가?
- 예수님께서 주인이 되신 삶을 살고 있는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적인 규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긍휼과 사랑을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사람을 살리는 믿음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님의 온유한 사역: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분
본문: 마태복음 12:15-21
서론
세상은 힘 있고 강한 자들이 승리하는 곳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역은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과 사역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강압적인 방식이 아니라, 긍휼과 온유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본론
1.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적대감을 피하시다 (15-16절)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고치시고,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적대감을 피하셨다
- 앞선 본문(12:14)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정면 대결하지 않으시고,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따라 행동하셨음을 의미합니다.
(2) 그러나 예수님은 여전히 사람들을 고치셨다
-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피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돌보셨습니다. - 예수님의 관심은 대립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3) 예수님은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 이는 사람들이 잘못된 기대(정치적 메시아)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이루시기 전까지,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습니다.
적용점:
- 나는 신앙생활에서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에 집중하는가?
- 예수님처럼 겸손하고 조용히 선을 행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가?
2. 예수님의 사역은 이사야의 예언의 성취이다 (17-21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이시다 (17-18절)
- 마태는 이사야 42:1-4의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택하신 종임을 강조합니다. - 예수님은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사역하시는 분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며,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소리 지르거나 다투지 않으신다 (19절)
- 예수님은 권력을 앞세우거나, 강압적인 방식으로 사역하지 않으셨습니다.
- 예수님은 사랑과 온유함으로 사람들을 변화시키셨습니다.
- 예수님의 방식은 세상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전혀 다릅니다.
(3)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다 (20절)
- “상한 갈대”
- 갈대는 원래도 연약한 식물인데,
이미 상한 갈대는 더 이상 쓰임 받을 수 없다고 여겨졌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 이는 세상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예수님께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다.
- 갈대는 원래도 연약한 식물인데,
- “꺼져가는 심지”
- 심지가 거의 다 타서 꺼져 가는 등불은
더 이상 쓸모없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희망이 사라져가는 영혼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 심지가 거의 다 타서 꺼져 가는 등불은
- 예수님의 사역은 심판이 아니라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4)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소망하게 될 것이다 (21절)
- 예수님의 사역은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것입니다.
- 결국 모든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통해 구원의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적용점:
- 나는 세상의 방식(힘과 권력)으로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온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 나는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들에게 긍휼과 사랑을 베풀고 있는가?
- 예수님처럼 포기하지 않고, 연약한 자들을 끝까지 돌보는 삶을 살고 있는가?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과 사역의 본질을 배웠습니다.
- 예수님은 다투거나 소리치지 않으시고,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 예수님은 상처받은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회복시키는 분이십니다.
- 예수님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소망이 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적용 질문:
- 나는 세상의 방식(힘과 논쟁)이 아니라, 예수님의 방식(온유와 긍휼)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내 주변의 상한 갈대 같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가?
-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소망을 믿고, 모든 사람에게 그 소망을 나누고 있는가?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본받아,
세상의 힘과 권력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의 태도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상한 갈대처럼 상처받은 이들을 포기하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처럼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소망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령을 거스르는 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란 무엇인가?
본문: 마태복음 12:22-32
서론
예수님의 사역이 점점 더 강력해질수록, 사람들의 반응도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랐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귀신의 힘으로 돌리는 심각한 비난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사건과
그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반응을 통해, 성령을 거스르는 죄의 본질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1.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과 사람들의 반응 (22-24절)
“그때에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니 그가 말도 하고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이르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1) 예수님의 기적: 귀신을 쫓아내시다
- 예수님께서 귀신 들려 눈이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치유하셨습니다.
- 그는 즉시 눈이 떠지고,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2) 사람들의 반응: 예수님이 메시아인가?
- 많은 사람들은 이 기적을 보고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 이는 예수님을 메시아(그리스도)로 인정하는 반응이었습니다.
-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귀신을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 기적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3) 바리새인들의 비난: 예수님이 귀신의 힘을 빌렸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는 대신,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완전히 부정하고 성령의 역사를 모독하는 행위였습니다.
적용점:
- 나는 예수님의 능력을 믿으며, 그분이 나의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가?
-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하거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없는가?
- 하나님의 역사를 볼 때 믿음으로 반응하는가, 아니면 의심과 비판으로 반응하는가?
2. 예수님의 반박: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25-30절)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1)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가?
- 예수님께서는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그 나라가 스스로 분열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 이는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 사탄이 자신의 부하를 쫓아낸다면,
자기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기적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셨다는 의미입니다.
(3) 강한 자를 결박해야 한다
- 예수님께서는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는 그의 집에 들어가 세간을 강탈할 수 없다”고 비유하셨습니다.
- “강한 자”는 사탄을 의미하며,
예수님은 사탄을 이기시고, 그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계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4)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으면 반대하는 것이다
-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적용점:
- 나는 예수님을 믿으며, 하나님 나라를 적극적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사탄의 권세는 이미 무너졌지만, 나는 여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가?
-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 삶은 결국 그분을 반대하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가?
3. 성령을 거스르는 죄: 용서받을 수 없는 죄 (31-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1) 모든 죄는 용서받을 수 있다
- 예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함을 받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께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성령을 거스르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 바리새인들은 성령의 역사를 귀신의 역사로 왜곡했습니다.
- 즉, 하나님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대적하는 태도입니다.
- 이는 하나님께 나아갈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행위입니다.
(3) 성령을 거스르는 죄란 무엇인가?
- 단순한 의심이나 부족한 믿음이 아닙니다.
- 성령을 거스르는 죄란,
끝까지 하나님을 거부하고, 회개할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셔도, 끝까지 거부하고 완고하게 반응하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적용점:
-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가?
-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로 반응한 적은 없는가?
- 성령의 음성을 들을 때, 즉시 순종하며 나아가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내시며, 하나님 나라를 가져오셨습니다.
- 예수님의 사역을 인정하지 않고, 성령을 거스르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역사에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고, 적극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성령의 역사하심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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