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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사회복지

'우리 역사 최전선' (박노자, 허동현 저) 정리 part2

by 망고를유혹하네 2023.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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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역사 최전선’을 읽고 part2

 

 

5. 변방 세력의 혁명

[허동현]

허동현 교수는 변화는 변방에서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고, 갑신정변, 갑오경장, 4.19혁명, 5.16군사쿠데타 그리고 2002년의 선거혁명이 이러한 변방에 머물던 주변인들이 중심으로 진입한 역사적 사건이라고 말하고 있다. 갑신정변, 갑오경장 그리고 5.16군사쿠데타의 비민주적인 공통점을 언급하면서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 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리고 2002년의 시민혁명에 대하여서는 그 주도 세력이 2~30대라는 점에서 갑신정변과, 그리고 외세와 동등한 관계수립을 지향했다는데서 갑신정변. 갑오경장과 또한 기성 질서에 대한 개혁을 주장한다는 데서 갑신정변. 갑오경장. 5.16군사쿧타와 유사하지만, 그 수단이 총과 칼이 아닌 투표와 촛불시위 같은 민주적이며 평화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것과 외세의 힘을 빌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그밖에 여러모로 과거의 그것과는 크게 다르다고 허 교수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허 교수는 제2공화국에 대해서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이정표와 같은 기능을 한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20~30대들이 선거혁명을 성취할 수 있었던 이면에서 50~60대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교훈하고 있다.

 

[박노자]

반면 박노자 교수는 개신 유림들이 변방인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박은식 등은 당시 양반 엘리트의 기준에서는 분명 변방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평민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저 시골 부잣집에서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란 지배층의 한명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들은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 확립의 욕망이 강했음을 이야기 한다.

결국, 이러한 평등 사상 없는 준엘리트층의 주류 진출은 한계성이 심했음을 지적하며, 이들이 인권 존중과 평등사상을 확고히 갖지 않으면 사회적 약자들의 신세는 더 이상 나아질 것 없음을 박노자 교수는 주장하고 있다.

 

[나의 생각]

2002 선거혁명은 월드컵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큰 이슈가 되었다. 3김으로 대변되던 우리 정치판에 변방인물인 노무현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것은 우리 정치가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허 교수의 말처럼 이는 변방에서 일어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5년의 정권기간을 살펴보면 변방이라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다른 권력의 도움을 받지 않았기에 더 많은 혁명을 할 수 있고, 더 큰 변화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개혁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세력이 없음에서 오는 한계를 볼 때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변화와 개혁은 변방에서부터라는 두 교수의 의견에 나 또한 동의한다.

 

 

 

6. 갑신정변 다시 보기

[박노자]

이번 장에서 박노자 교수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의 피를 흘리게 했던 갑신정변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부당한 갑신정변을 혁명으로 호도했던 서재필과 박정희, 김일성 정권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갑신정변으로 인해 많은 피가 흘려졌으나, 이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는 모습이 박정희 정권이나 김일성 정권과 닮았고, 그들의 논리가 서로 일치 않다고 박 교수는 주장한다.

 

[허동현]

그러나 허동현 교수는 갑신정변이 메이지 유신이나 5.16군사쿠데타처럼 성공했다면 그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갑신정변을 변호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는 것으로 갑신정변에 대한 김일성 정권의 평가도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또한 이들 정변세력은 민비세력에 대한 과잉방어로 보아야 하며, 비록 그들의 잘못된 수단이 정당화 될 수는 없으나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비판은 너무 가혹하다고 변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한국의 근대가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보다 참혹하지 않음을 이야기 하며 타자와 더불어 살기와 근대 만들기는 서로 모순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나의 생각]

극명하게 대립되는 갑신정변에 대한 두 사람의 평가만큼이나 갑신정변을 말하기란 쉽지 않은 주제인 것 같다. 분명 허 교수의 주장처럼 정변세력은 민비 세력에 대한 방어로써 정변을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타국에 비하여 비교적 적은 피를 흘렸기에 면죄부를 주어야 한다는 듯 한, 허 교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마치 허 교수는 대의를 위한 소수의 피를 흘리는 것은 가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설령, 잘못된 수단을 사용했다면 그 후에는 반드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박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7. 흥선대원군 다시 보기

[박노자]

흥선대원군만큼이나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이 또 있을까?

박노자 교수는 흥선대원군에 대하여 한명의 개혁자로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박 교수는 근대화의 기준을 서구식 패러다임에 맞추고 있는 시각들을 비판한다.

대원군 당시 민중들은 깨끗한 정부를 소망했다. 썩을 대로 썩은 당시 관료들의 부패를 개혁하기 위해 흥선대원군은 고리대로 변해버린 환곡제를 상당 부분 폐지했고, 사창제를 실시하는 등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것에 대하여 박 교수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쇄국정책을 비난하며 근대화를 책임을 묻는 것에 대하여는 정통시대 인물인 흥

선대원군에게 묻는 것은 무리가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허동현]

허동현 교수 또한 흥선대원군의 능력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다만 새가 될 수 있었음에도 물고기로 안주했던 대원군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근대라는 것이 서구적인 개념이긴 하나, 그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박노자 교수의 주장에 대하여 반문하고 있다.

또한, 허 교수는 대원군이 당시 기득 세력이었던 안동 김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을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자신들의 집권을 도운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 개혁을 추진하지 못했다는 점과 비슷하다며 이를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허 교수는 개혁이란 것은 집권자들이 자신들을 도와준 세력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말하고 있다.

 

[나의 생각]

개혁의 성패는 자신의 집권을 도와준 세력에게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는 허 교수의 주장이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분명 그의 주장은 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그것은 단지 이상일 뿐이다. 정권에 대한 원조 세력으로 인해 개혁을 단행할 수 없음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없다면 그 개혁 또한 힘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8. 황사영 백서와 외세

[박노자]

박노자 교수는 황사영 백서를 민족에 대한 배반이 아닌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보편적 정의를 지키려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또한 황사영의 백서를 외세를 끌어들이기 위한 흉서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으며, 그 백서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자료들의 의미들도 되새겨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끌어들이려고 했던 외세라는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을 말하며, 박 교수는 황사영의 백서를 외세에 도움을 청했다기 보단 요즘 말로 유엔에 탄원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박 교수는 황사영의 선택에 대하여 불완전한 인간으로써 당시 상황에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태도였을 것이라며 그를 변호해 주고 있다.

 

[허동현]

반면 허동현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또 다른 폭력을 부르려 했던 황사영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더구나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 받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우리 사회에서 황사영의 백서에 대하여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의 자유를 위한 외침으로 볼 수 없다고 허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비록 황사영이 잘못된 수단을 선택하려 했던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는 미명아래 개인의 인권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나의 생각]

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이 외우고 있는 국민의례, 우리는 이 짧은 글 속에서도 개인의 인권보다는 나라와 민족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우리의 사회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그 만큼 황사영 백서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이미 나라와 민족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이다. 물론 나 또한 허 교수의 말처럼 개인의 신념을 위해 또 다른 폭력을 부르는 것에 대하여는 반대한다. 그러나 황사영의 잘못된 주장 이면에 숨겨져 있는 소수에 대한 전체(권력)의 폭력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황사영이 외세를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보는 시각은 아닐 듯하다.

황사영의 의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지만,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어야 할 것이다.

 

 

 

9. <조선 책략>의 허와 실

[박노자]

황준원의 <조선책략>에 대한 두 사람은 극명한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선 박노자 교수는 친미론의 근간을 <조선책략>에서 찾고 있다. 김홍집과 황준헌의 필담을 담은 소책자인 이 책은 러시아를 악당으로 규정하고 조선을 이 악당으로부터 구해줄 수 있는 경찰을 미국으로 소개해 주고 있다. 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조선이 미국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결국 조선이 미국에 문을 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 교수는 <조선책략>이 신미주의자, 친미주의자를 만들어 냈고, 왜곡된 미국인식을 갖게한 트로이 목마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허동현]

반면 허동현 교수는 조선이 청나라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정보력이 미비하고 순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변호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조선책략>이 조선에게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판도라 상자 속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조선 정부는 중국이 의도적으로 배포한 러시아 위협론을 믿지 않고, 그에 대한 진위여부를 타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와 인식을 바탕으로 조선은 오히려 러시아를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의 세력 균형을 이루는 데 필요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고, 조선 정부는 개항 이후 줄곧 청. 일 두 나라를 견제하는데 러시아를 이용하려했다.

또한 허 교수는 조선의 친미라는 것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는 자력 없이 남의 힘만을 이용하는 책략으로는 열강의 각축 속에서 이겨나갈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나의 생각]

스스로를 지킬 수 없어 남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했던 미국이라는 나라가 1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마치 우리를 속국인 마냥 대하는 것을 볼 때 한편으로 답답한 마음도 들지만, 안타까운 마음에 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장을 통해 자강을 추구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새기게 되었다.

 

 

 

10. 아나키스트의 이상과 좌절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로 번역되는 자유와 평등,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유토피아적 이데올로기와 그 운동을 일컫는 말이다.

 

[박노자]

아나키스트에 대하여 박노자 교수는 사회주의의 한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아나키즘 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폐쇄적인 민족주의를 상당히 탈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그러나 당시 정화암과 그 동지들이 사용한 암살과 같은 운동 방법에 대해서는 아나키즘의 근본 정신인 인류 협동정신과 모순됨을 지적하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허동현]

그러나 허동현 교수는 아니키즘과 마르크시즘은 다르다고 규정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좌우의 벽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실천했던 것다고 말한다,

허 교수는 박 교수가 주장했던 상호간의 협력을 추구함으로써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동의하고 있다.

 

[나의 생각]

이러한 아나키즘에 대하여 나 또한 동의한다.

우리 사회의 폐쇄적인 일면을 극복할 수 있는 한 방법임에 틀림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하여 반대한다.’는 이들의 정신은 어쩌면 예수그리스도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피, 혁명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이들의 지금까지의 행보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며, 더 낫은 사회를 위해 더 큰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상식적이며, 평화적인 방법이 지향되어야 할 것이다.

 

 

 

11. 후세인과 박정희

[박노자]

마지막 장에서 두 사람은 후세인과 박정희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먼저 박노자 교수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박정희와 후세인은 상당히 닮을 꼴을 하고 있다. 국방에 힘을 쏟았던 것이나, 유일 정당 중심의 정치, 제철 산업에 대한 관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철강은 자주 국방의 기초 원료라는 것에 박 교수는 집중한다.

박 교수는 후세인과 박정희의 독재가 나쁜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 외세의 지배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허동현]

반면 허동현 교수는 결국 개발독재라는 것도 외세와의 타협에 의한 것이라면 반박한다.

또한 두 사람의 독재가 자국의 개발과 근대화를 이룩하는데 큰 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결코 이러한 명분이 전쟁을 합리화 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 군부의 힘에 의한 개발 독재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국민을 전쟁으로 내몰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의 개발독재로 인해 재벌자본주의가 생겨났고, 이는 훗날 IMF라는 국가 위기를 가져왔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각]

다수의 신세대들은 박정희를 싫어한다. 물론 나 또한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그 시대를 살아본 것은 아니다. 그저 그가 독재자였기에, 그의 행동은 옳지 않았다고 판단하기에 싫어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대화를 하다보면 놀라곤 한다. 분명 부모님은 그의 독재를 경험했던 분이시지만 그를 호평하시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박정희에 대한 비판 일변도였던 나의 시각도 조금씩 변하게 되었다. 물론 그의 독재를 옳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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