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종교로 보는 ‘죽음의 의미’ (존 바우커), 힌두교와 기독교 죽음에 대한 이해 비교
4. 힌두교와 기독교의 죽음에 대한 이해 비교
기독교와 힌두교의 죽음에 대한 이해의 비교를 기술하기에 앞서 기독교의 죽음에 대한 이해를 살펴보자.
기독교에서는 죽음을 단순한 식물학적인 과정으로 인식하지는 않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죽음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로 소급하여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인간은 태초에 본래적으로 선하게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타락으로 본질상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되었고, 인간은 도덕적 국면인 참지식, 의, 거룩을 포함한 도덕적 성질 전체와 지능적 국면인 지식, 감정, 의지의 각 부분들과 기능들이 전적으로 부패되어 그의 본성에는 영적으로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단절의 상태는 영적인 죽음을 초래하게 되었고, 육적으로도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죽음의 상태를 해결해 주기위해 예수님께서 오셨고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또한 그의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도 부활의 가능성을 열어주시고 약속해 주셨다.
힌두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는 다양성이라는 부분에서 나타난다. 힌두교에서는 다양성에 대해 긍정하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길을 열어주었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구원에 이르기 위한 길은 오직 예수님에게 집중되어 있다.
힌두교에 있어서 육신을 입은 자아는 영원한 것이고 따라서 몸이 죽는다 해도 자아는 죽지 않으며 마치 옷이 낡고 닳으면 그 옷을 벗고 새 옷을 입는 것과 같이, 육신을 입은 자아 또한 낡은 몸을 버리고 새로운 몸을 입는다는 것이다. 즉 힌두교에서는 윤회를 인정한다.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윤회를 부인하며 인간은 오직 한번의 죽음만을 경험한다.
부단한 윤회의 흐름 속에서 더 고귀하게 태어나느냐 혹은 더 비천하게 태어나느냐 하는 것은 카르마를 통해 결정되어진다. 즉, 과거에 행한 행위의 결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며, 현재의 행위들이 원인이 되어 다음 생이 결정되는 것이다. 또한 ‘해방을 지향하는 길’로서 요가 수행을 강조하고 있다. 요가는 여러 가지 형태를 띠지만 본질적으로 흩어진 자아를 참된 자아, 통합된 자아, 하나의 자아로 회복시키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요가는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어떠한가? 기독교에서는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종교에서의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힌두교에서는 반복되는 윤회의 흐름을 끊고 출생과 죽음으로 특징지어지는 삶으로부터 해방하여 니르바나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 반면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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